집처럼 조그마한, 그래서 희소성의 원칙이 극도로 빛을 발하는 포도밭은 로마네 콩티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그보다 더 작은
포도밭도 있다. 바로 지척에 있는 라 그랑 뤼는 면적이 1.4㏊밖에 되지 않는다. 로마네 콩티와 한 배를 탔었던 라 로마네는 이보다
더 작다. 불과 0.85㏊다. 로마네 콩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콩티 공작이 소유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마네 콩티와 라 로마네는 한
덩어리였다. 이 세 군데는 공교롭게도 모두 본 로마네 마을에 달려 있다. 밭과 밭의 차이, 그 땅의 맛이 서로 다름을 열심히 파헤친
수도사들 덕분에 오늘날 부르고뉴 맛의 비밀이 애호가들의 큰 도전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르고뉴만이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될까. 대규모 양조장을 자랑하는 보르도에서도 작은 포도밭을 찾을 수 있다. 메독
1등급 양조장이 이삼십 만병을 매년 병입하는 것에 비해 겨우 몇 천병 혹은 1만병 정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량 생산이다. 대표
적인 곳이 르팽이다. 소나무란 뜻을 지닌 이곳은 포므롤 마을에 위치한다. 포도밭을 끼고 있는 멋들어진 샤토의 풍채는 전혀 아닌
어찌 보면 초라하기까지 한 평범한 이층집 구조이다.
르팽의 주인은 포도알을 호호 불어가며 쓸어가며 애지중지 키워 대단한 풍미를 지닌 와인을 탄생하였다. 메를로로만 양조한다.
페트뤼스와 비슷하다. 1981년부터 출시한 르팽은 이듬해 일약 스타로 부상한다. 1982년 빈티지 매력이 보르도 최고봉 페트뤼스를
능가하였다. 많은 평론가들은 르팽의 곱고 고운 질감 속의 풍부한 느낌은 아주 예외적이라며 높이 평가하였다. 르팽 포도밭은 2㏊
남짓이다. 양조는 지하실에서 한다.
입구에 발효통 등을 세워두었고, 문을 열면 손가락으로 금방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오크통이 놓여 있다. 좁은 창고 같은 지하실에
채워두기에도 부족한 적은 수량의 와인을 만든다. 훗날 이런 아기자기한 규모의 포도원에서 만든 고품질 와인을 거라지 와인 즉
차고 와인이라 부르는데, 그 효시가 르팽이다.
와인잡지 디캔터에 올해의 인물 2006년판을 장식한 마르셀 기갈 역시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포도밭으로 유명하다.
그가 소유한 코트 로티 마을의 미니 포도밭 덕분에 그는 기라성 같은 양조가 반열에 올랐다. 그 미니 포도밭을 흔히 '라라라'라고
부른다. 여성 정관사 '라'로 시작하는 라 물랭, 라 랑돈, 라 튀리크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세 포도밭에서는 각각 6000병, 5000병, 1만병이 생산된다. 면적이 겨우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땅이 타들어갈 정도로 내리쬐는 뙤약볕에 착안해 만들어진 코트 로티 마을 중에서도 가장 비탈지고 많은 일조량을 얻는 구석들
이다. 가파르고 험해 포도를 딴 바구니가 어느 정도 무거워지면 즉각 통으로 옮겨 담아야 한다.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가 출연하는 DVD '와인코스'에는 얼마나 열성적으로 이 한정 생산 와인들을 구하려 하는지가 잘 설명
되어 있다. 어떤 이는 스포츠카를 줄 테니 라라라 시리즈를 달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백지수표를 내밀기도 한다.
라라라는 희소성의 미학이 극도로 드러나는 와인이다.
주인장 마르셀은 사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정수량 라라라를 구입하기 위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다른 와인을 일정량
구매해야 라라라를 살 수 있다는 내용인데, 이렇게 해서 마르셀은 론밸리 지역에서 갑부가 됐고 와인의 유명세는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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